분노에서 사명으로, 내가 장례를 시작한 이유
CEO 송슬옹님 인터뷰
고이를 시작한 마음
“부모님의 장례식은 특별하게 치러주고 싶었다”
Q1. 고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장례지도사의 아들로 자라서, 어린 시절부터 장례식의 풍경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늘 ‘남의 일’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의식 없이 살아왔죠.
그러다 스무 살 무렵,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큰 충격이었고, 한동안 웃음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단순히 할머니와의 애착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장례식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강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장례의 본질은 고인을 온전히 추모하고,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달래는 것인데,
현실은 형식과 절차에 매몰되어 의미를 잃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적어도 우리 부모님의 장례만큼은 특별하게 치르고 싶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어떤 상조 회사도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창업 동기 인터뷰>
Q2. 하지만 초반에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사실 제 문제의식은 또래인 20대 친구들에게는 공감을 얻었지만, 30대 이상에게는 낯설고 급진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책상 위에서만 고민할 수는 없었죠.
직접 확인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유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간단한 MVP(최소 기능 제품)를 만들어 실험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학교 ‘벤처창업론’ 수업을 통해 친구들 이 문제를 같이 고민할 수 있었고,
함께 웹사이트를 만들어 Google Ads에 50만 원을 투자했는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CTA 클릭률이 0%였어요.
그래서 '아... 이건 아직 시기상조구나' 라는 걸 깨달았죠.
Q3.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그때 알게 된 게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창업자의 고질적인 실수를 반복했다는 거예요.
‘시장과 고객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실수 말이죠.
그래서 멋있어 보이는 사업계획서를 내려놓고, 시장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버지와 업계 동료들을 붙잡고 장례의 생리와 용어를 하나씩 배웠습니다.
장례지도사 자격증도 따고, 장례식장과 상조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그러면서 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장례 정보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네이버 ‘지식인’이라는 오래된 채널에서 실제 유료 고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상주의 입장에서 장례 정보를 투명하게 전달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고객들은 저와 고이를 신뢰해주셨습니다.
랜딩페이지조차 없고 카카오톡 채널만 있을 때였는데 말이죠.
그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게 진짜 고객의 Pain Point구나.'
장례에서 발견한 확신
Q4. 장례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면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첫째, 장례 서비스는 세상 어떤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팔아본 그 어떤 제품·서비스보다 훨씬 큰 보람과 리턴을 안겨줬습니다.
발인이 끝난 뒤 상주 가족들이 제 손을 잡으며 “정말 감사하다”, “명함 없냐, 소개해주겠다” 말씀해주셨습니다.
심지어 장례 경험을 직접 회상하며 고이를 칭찬하는 영상을 자발적으로 촬영해주신 상주님도 계셨어요.
우리 브랜드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것만큼은 업계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촬영했던 장례 후기>
개인적 차원에서도, '이 일이라면 평생 해도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워라벨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죠.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건 일과 삶의 배타적인 관계를 전제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일과 삶의 진짜 균형은 두 영역의 교집합을 늘려감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실제로 저는 장례식을 치르면서 살면서 가장 충만한 기쁨을 느꼈고, 이 기쁨은 일상 생활의 행복감과 연결되었어요.
결국 이건 다시 더 좋은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할 동기가 되었죠.
둘째, Day1부터 매출을 내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첫 회사는 Tech 기반의 정성적인 스타트업으로서 시드 투자 2억과 팁스를 받고 J-Curve를 그리려는 회사였습니다.
90%의 스타트업이 PMF를 찾지 못해 J-Curve를 그리지 못하는데 이 과정에서 구성원은 정말이지 극한의 고통을 겪죠.
부담감, 책임감 그리고 성과에 대한 압박감은 '죽는 게 나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만큼 힘들어요.
당시에 저는 역량이 너무나 부족했고,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관리하지도 못 했어서 결국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목표한 지표는 성장시키지 못했지만 몸무게만큼은 지수 성장했습니다.(웃음)
제가 이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폭식뿐이었습니다.
<입사 전, 2018년 80kg>
<퇴사, 2020년 110kg>
반면 고이는 달랐습니다.
시장 밑바닥부터 구르며 고객을 이해했고, 1년간 최소한의 가설을 검증했습니다.
Numbers(지표)만 보면 초라하다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저와 우리 팀원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죠.
'적어도 우리 팀원들에게는 내가 겪은 고통을 상당 부분 줄였구나' 하는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MVP Test 2021년 1월~6월>
분노가 만든 미션
Q5. 업계에 뛰어들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Vision 1.0 에서도 서술했듯 장례 산업에 만연한 관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요.
🕴️"상주님 부모님 마지막 가시는 길 수의 한 벌 좋은 걸로 해드리는 게 효도 아니겠습니까?"
장례지도사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정직을 강조하던 한 상조업체 대표님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첫 마디에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여기는 전쟁터야"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 업계를 A부터 Z까지 경험해 보니 알게 됐습니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는 결국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마저 파는 것이었어요.
물론 이것을 개인의 잘못으로만 보진 않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적응한 결과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현실을 마주하면서, 단순한 분노를 넘어 ‘이걸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강력한 Mission 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이를 성공시켜야만 하는 이유이자, 저의 가장 큰 동기입니다.
송슬옹이라는 사람
Q6. 본인을 한마디로 소개한다면요?
특정 사람을 규정한다는 점 때문에 MBTI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ENTJ-A, '대담한 통솔자' 유형입니다.
저는 강한 추진력과 판단력으로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동시에, 때로는 타인의 실수를 가차 없이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만들 때도 있지만, 동시에 주변 동료들의 역량을 발굴하고 협업을 끌어내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늘 마음속에 새기는 것은, 어떤 성취도 혼자 이룰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를 도와준 동료들의 노고와 재능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dit. 은수
고이가 동료를 찾습니다